1. 병원 실습 들어갔다.
의사가 되는 과정을 인생에 비유하자면, 병원 실습은 이제 갓 수정해서 착상에 이른 정도? ㄱ-;;;
요걸 인간으로 봐야 하나, 인간 전 단계로 봐야 하나...
마찬가지로 요걸 의사로 봐야 하나, 의사 전 단계로 봐야 하나 참 애매한 단계. (사실 의사전이긴 하다;)
할 수 있는 건 없고 그저 뺀질거림만 갈수록 늘어나는 단계.
꿈에도 그리던 병원 실습이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좋지 않다.
2. 최근들어 내 화두는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가" 이다.
그렇다면 직업적인 면에서 어떻게 하면 행복하고, 재미있게 살 수 있을까..가 문제.
천성이 외과 계열이다, 라는 건 변함이 없지만, 병원 일이라는 건 생각보다 훨씬...
잔인하다. 피 튀고 살 자르고, 의 잔인함이 아니라, 병을 치유하면서 의외로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못하는 순간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환자와 만난다는 것의 기본 전제는, 과연 '환'자, 인 것일까 아니면 환'자'인 것일까? 상대를 '아픈' 사람으로 봐야 할지 아니면 아픈 '사람'으로 봐야 할지. 그 점은 참으로 구분하기가 어렵고, 더더욱 몇몇 과들은 그런 점이 도드라진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면서 의외로 나는 법의학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으로 보고, 구제할 수 있는 과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이제 겨우 실습 6주차면서 고민하고 있다는, 그런 시덥잖은 이야기. 이것은 수정란이 자궁 속을 떠돌면서 "나는 태어나서 3주 6일 5시간만에 엄마라고 말하고야 말겠다" 뭐 이딴 생각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핫핫.
(일단 국시나 통과해, 라는 게 대다수 선배들의 조언이라는 게 또 한 번 슬퍼진다.....)
(그 다음 조언은 인턴하면 결정될거야...가 있던가.)
3. 사실 난 의대 체제에서 선배들과의 접점이 참으로 좋았더란다. 조대 의전 1기로 들어와서, 위의 의학과 선배들은 2년 동안 받지 못했던 후배를 받아들이면서 참 우리를 많이 참아주셨(..^^;;)고, 다른 선배들도 어지간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후배로 많이 받아주셨다.
그러나 의전은, 어쩔 수 없는 걸까. 이게 예과 2년의 알콜성 마취로 인한 세뇌 유도 과정이 없었기 때문인건지 진정 궁금해지긴 한다. 어째서 의전들은 이렇게 선후배 관계를 개떡으로 아는 건지. 내가 선배에게 받은 만큼, 후배들 역시 선배들에게 안내하고 훈련 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동아리 집도식은, 의전 1~4기랍시고 홀랑 1시간 거리의 펜션으로 야유회를 겸해 떠나버렸다. 나는 집도식 때 OB 선배들께서 장미꽃 사주시면서, 참 예뻐라 이런저런 이야기 해 주시고 했었건만, 지금 1학년들은? 물론 본과 2/3/4학년 선배들과 함께 했으니 충분할 수도 있다.. 라고 나는 생각치 않는다. 오래된 동아리의 힘을 이딴식으로 낭비했다는 것이 참,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리가 즐겁다고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럴거면 그냥 친목 모임으로 가야지, 동아리로 가는 게 아니라. 뭣하리 동아리 예산을 끌어다가 OB 한분도 안 모시고 홀랑 즐기고 오냔 말이다.
...이런 말을 하면 또 분위기를 깼다느니, 서로 편하게 즐기자느니, 재미없었냐느니, 하는 전혀 논점에 어긋난 공격성 대답만 들어온다는 데에서, 지쳤다. 이따금 내 어리석음과 과거를 후회하는 일은, 과거 수능을 봤을 때 분명 그 점수면 조선대 의대는 들어왔었다는 거다. 그랬으면 지금 의전원 생들을 죄다 까버렸을 거다. 그래도 OB였으면, 나이 많았으면, 또 아무 말도 못하고 앞에서는 재롱 떨면서 아부하고 뒤에서 뒷담이나 까댔을 역겨운 위선자들.
4. 문제는 그거다. 의전들의 가장 큰 문제는 '의식'이 없다는 거다.
선후배간의, 동아리의, 어떤 모임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딴 것은 하나도 없이 제 돈 낸 것 본전 뽑으려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교수님들이나 선배님들께서 '돈독 오른 의전'이라 부르시는 걸, 의전이나 (심지어 교수님/선배님 당사자들조차) 오직 전문의/전공의 때의 연봉 계산으로 착각하시는 듯 한데, 그것보다는 훨씬 더 큰 의식적 배경이 있다고 판단한다. ..거지 근성이다.
의사라는 직업은 매우 독특한 전문직이다. 한 생명에 대한 전적인 판단과 지식을 훈련받은 직종은 달리 없을 것이다. 수술, 약, 투약기간, 시간, 움직임, 사람의 자유나 때로는 선택권에 대한 협박까지 일삼으면서 의사들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주체가 된다. 그것이 수술실이든, 진료실이든. 그를 위해 지식은 물론이요, 술기를 쌓아야 하기에 이 직업은 정말 쉽지 않은 직업이다.
물론 의예/의학과에서도 그렇게 차이가 크지 않을 지 모른다. (실제 꽤 이기적인 선배들도 만나서 학을 떼기도 했고...) 하지만 의전에서는 그 %가 유독 더 도드라진다고 말할 수 있다. 바로 주인의식의 부재이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당위성과 주체적인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마치 갓 해방된 노예가 주인 의자를 차지하고 거들먹거리듯이 "그 전의 전통은 다 구려" "씨발 나이가 우선이지" "사회를 겪어본 만큼 우리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라느니 하면서, 막상 주인 의식을 갖고 전통을 올바른 방식으로 고치고 합리화시킨다던가, 선배들의 나이가 아닌 속-그 힘든 과정을 먼저 통과했다는- 을 본다던가, 의대 사회에 있어서는 그들이 더 많이 겪어왔다는 것 등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스스로가 막 굴러떨어진 (시대의 어긋난 미친 정책이지만 나 역시 혜택을 본 의전이라는 미친 제도의) 이득에 달라붙어서 할짝거리고만 있다.
5. 실습 초기 법의학을 뛰고 난 후 - 오늘 PA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
정확히는 이 의료제도가 어디에서부터 손댄다면.. 그야말로 알렉산더 대왕이 엉크러진 실타래를 잘라버리듯 과감하고 유혈적이고 난폭하고 혁명적인 (어쩌면 폭동적인?) 방법.. 밖에 없을 것 같다, 내가 보기엔. 하지만 그게 싫다면 어쨌든 문제화하고 토론을 해서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오늘, 외과 실습을 (외부 병원이지만) 처음 뛰면서 PA를 겪었다. 수술 어시스트를 자연스럽게 하는 걸 보니, 일선에서 PA들에 대한 옹호글을 올리는 건 이해는 갔다. 하지만 그게 PA 제도의 합법화와 광역화로 이어지는 걸 찬성한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 PA를 훈련시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힘들다고도 하고. 그렇다면 대체 왜, PA를 굳이 더 훈련시켜야 한단 말인가? 그 옹호 논리가 전공의 Vs PA 의 몸값 때문이란 경제적 논리 밖에 없다면, 과연 의사들이 될 의대 학생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해야 옳단 말인가?
6. 같이 실습하던 학생들과 PA 샘의 능숙함에 감탄하다가, 그래도 PA를 줄여야 하지 않냐고 했더니 그 자릴 그럼 누가 메꾸냔다. 전문의 쌤이 있지 않냐고 했더니 누가 그 비싼 전문의를 쓰냔다. 미래 우리 일자리라고 했더니, 그들이 날 비웃으며 이야기한다. 병원에서 그런 이야기하면 PA들이 날 찬밥 취급 할 거라고.
내가 간호대 실습을 뛰는 중인가? 아니면 같이 뛰던 학생들이 모두 로얄 내지는 진성골이라 아버지 병원을 물려받으며 PA도 같이 물려받기로 되어 있던가? 그들이 웃으면서 덧붙인 이야기는 더더욱 가관이다. 학교 ENT에서 어떤 PA는 교수님들도 못 건드리는 여자가 있다고. 그게 웃으면서 할 이야기인가? 저들은 그 교수님들을 같이 비웃기에 그렇게 이야기 하는 건가? 이제 겨우 본과 3학년, 2년 후에 그 PA들 아래에서 굴려먹어도 좋다는 저 사람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인턴을 하고 레지던트를 하려는 건가?
다시 말하지만 의사는 전문직이다. 사람의 생사 여탈을 결정해야만 하는. 이 선택권을 위해 우리는 피똥과 디스크를 싸질러가면서 공부하고 있고, 지금 실습 와중에도 똥오줌 받아가면서 병실을 전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하나라도 더 배우고, 하나라도 더 겪고, 하나라도 더 선배들께 전해들어야 나중에 내 손에 올 환자를 구할 수 있기에.
그 선택의 상황에는 간호사도, PA도, 동료도, 선배도 없을 것이다. 아이가 어른이 되면 의당 그러하듯이 오직 '나'라고 완성된 의사가 있어야 할 것이고, 그것은 오직 '나'의 권리이자 의무인 것이다.
7. 옳게 살고 싶다는 욕구는 늘 내 삶을 괴롭힌다.
옳게 살고, 옳게 해내고 싶은 건.. 내 행복과 연결되는 걸까.
나는 어떤 의사 짓을 해야 내가 원하는 의사가 될 수 있을까.
2012. 04.23
답을 구하고 싶다.
답을 구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