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그 무게.


 드디어 워릭 브라운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몇 주나 늦었지만 워릭은 그 내내 나를 기다려주었던 듯 싶다. 숨을 헐떡이며 마지막으로 버티려던 그 모습을 보면서, 워릭의 고비를 지켜봐온 지난 8 시즌, 강하면서도 여린 그 사내. 매혹적인 초콜릿 빛 사내를 이제는 못 보는구나, 하며 가슴이 아파왔다.
  피에 흠뻑 물든 옷을 어찌 하지 못한 채 CSI 본부의 복도를 걸어가는 길, 그에게 누가 감히 말을 걸 수 있었을까 싶다. 아들의 젖은 피로 옷이 물든 사나이를 본 적은 없지만, CSI : LV 9x01편에서는 볼 수 있었다.
   새라 사이들이 있었으면, 하고 바란 순간, 복도를 꺾은 사무실에는 정말 그녀가 앉아 있었다. 전보다 덜 지친 표정, 생기가 살아난 표정. 그리섬을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기 전, 알콜 중독에 빠지기 전 그녀의 발랄한 모습으로. 그래서 반가웠고, 일을 하나씩 처리해나가는 모습이 가슴 아파왔다. 그렇지만 그녀가 있어서 다행이었고- 그녀는 그 자리에, 워릭의 아픔을 같이 나눌 수 없이 뒷처리를 해야 했던 자신을 또 가슴 아파 했어야 하고.

 CSI 시리즈가 시작한 것도 벌써 9년이 되었고, 이 캐릭터들의 성장을 지켜봐 온 시간도 9년이 되었다는 것이다. 로.맨.스.하.나.없.는. 이들의 관계를 따라 오다보면, 자연스럽게 커플링이 아닌 패밀리잉을 ... 얽게 된다..(아마?-_-; 사실 나도 꽤 사심이 있게 커플링을 했는데, 워릭x캐서린이었고, 젠장, 워릭은 죽었으니 절대적인 가족화를 지지하련다.)
  
  사실 많은 미드에서 유사 가족 관계를 그려낼 수 있는 편인데 (커플링도 어느 정도는..), 특히 수사물에서 그런 관계가 눈에 뜨인다. 실제 가족이 있었어도 (CSI LV 캐서린, NCIS 깁스,Law&Order SVU  스테이블러) 시간 부족이나 기타 문제로 싸우기가 일쑤지만, 직업적인 동료 관계에서는 서로 생명까지 맡길 수 있는 관계이다보니 오히려 유사 혈연관계가 혈연 관계로 강화되기 일쑤. 가족을 꾸리려고 해도 (CSI LV 워릭, NCIS 디노조, Law&Order SVU 벤슨 ) 동료에게 보내는 신뢰에 오히려 그들은 가족을 꾸릴 수 없이 동료에게 되돌아오는 관계가 된다.

 결국 남는 것은 가족이 아닌 가족, 그러나 생명까지 맡기고 그들의 감정에 서로 강하게 공명하는 관계.

 부부보다 더 짙은 색채를 띠는 부부고, 부모-자식보다 더 진한 신뢰를 풍기는 부모자식.

 그 관계가 서글프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워릭의 죽음에서, 그의 장례식에서 길 그리썸이 못 다한 말이 무엇일까를 떠올리면서, 그래서 슬펐다. 내 사랑하는, 자랑스러운... 아들 아닌 아들.
 시리즈 초반에는 서로를 동료로만 인식하고, 이성으로도 인식 가능했던 관계가 시즌이 깊어지면서 가족 관계로 정착한다. 이들 수사관들의 서글픈 유사 가족 관계는, 아마 인간들이 사회를 구축하는 한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고.... 그만큼 그들의 외로움은, 동료를 통해서 의지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그리고 워릭, 안녕. CSI LV 에서 가장 좋아했던 캐릭터.

by 我的雲 | 2008/10/21 15:11 | 감상적 감상기 | 트랙백 | 덧글(2)

Commented by 수집 at 2008/10/22 11:27
워릭 친자 소송 인터뷰 영상을 볼 때의 길과 새라는 어떤 심정이었을지 상상도 안 가네요. 워릭때문에 CSI LV를 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참 드라마 한 편에 며칠을 우울하고 있답니다.
Commented by 我的雲 at 2008/10/22 12:59
9x01은 여러가지로 참 슬픈 에피소드 였던 것 같아요...워릭 인터뷰도 그렇고, 그리섬의 옷이 피로 물든 장면도. 돌아온 새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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